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3&oid=016&aid=0000301133

 

 

 

인간 본질에 관한 절대적이고 상대적인 고찰


극사실적이면서 몽환적인 인체작품을 선보여온 조각가 김현수(33)와 강렬한 분위기의 일그러진 자화상으로 입지를 다진 화가 변웅필(39)이 ‘아트 배틀’을 펼친다. 무대는 서울 신사동의 갤러리현대 강남(대표 도형태). 날짜는 오는 4월26일까지다. 김현수는 [Breik]전(展)을, 변웅필은 ‘한 사람으로서의 자화상 1과 1/4’전을 선보이고 있다. 두 작가는 장르와 표현양식은 서로 다르지만 스스로의 정체성과 인간의 본질을 꿰뚫고 있는 것은 똑같다.

 

▶신묘한 몽상의 세계- 김현수의 [breik]전=김현수가 전시에 내놓은 조각들은 한편의 판타지 영화를 보는 듯하다. 작가는 자신의 페르소나인 미소년과 ‘뿔’을 소재로 한 스토리에, 인어와 목양신 사티로스를 등장시켜 환상의 세계를 구축하고 있다. 작품들은 어린 시절 유희의 연장선상에서 지극히 내밀한 작가의 욕망과 꿈을 보여주고 있다.

 

작가는 신화 속 존재들을 맥박이 뛰고, 핏줄이 도는 현실의 인물로 정교하게 실재화했다. 즉 꿈결같았던 유년시절로의 회귀욕구와 집착을 작업의 모티프로, 꿈에서나 존재할 법한 대상들을 극사실적으로 표현해내 기묘한 시각적 아이러니를 선사한다.

 

한 점의 조각이 나오기까지의 김현수의 작업과정은 매우 복잡하고 지난하다. 흙으로 캐릭터를 빚어내고, 합성수지의 일종인 레진으로 형상을 떠낸 후 정성껏 색을 입힌다. 이어 인물의 머리카락과 눈썹을 일일이 심고, 땀구멍과 실핏줄까지 정교하게 표현하는가 하면 미세한 눈동자의 떨림도 표현해 인물들은 마치 시간이 정지된 듯한 아득함을 느끼게 한다.

 

200904090244.jpg

성장을 거부하는 미소년이 뿔을 꺾는 모습을 정교하면서도 몽상적으로 표현한 김현수의 조각 [Breik].

 

김현수의 작업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작품을 관통하는 핵심인 ‘소년’과 ‘뿔’을 이해해야 한다. 소년은 작가 자신의 페르소나로써 전체 이야기구조의 주체며, 뿔은 성인이 되길 거부하는 작가의 욕망을 상징한다. 나이가 들며 뿔이 자꾸 자라나자 소년은 뿔을 거부하며 이를 일순 꺾어버린다. 그러자 선홍색 피가 소년의 발치를 적신다.

 

이처럼 동화적 상상력으로 가득찬 김현수의 작업은 판타지를 이야기하고 있지만 오늘 이 시대 우리의 삶을 시사한다. 현실, 비현실적 요소들이 교차하는 그의 작품은 일종의 상황극같은 무대를 연출하며 우리의 억눌린 내면을 비춰준다.

 

미술평론가 고충환은 “김현수의 인체조각들은 초현실적 비전을 암시한다. 리얼리티의 정점에 위치해있는 조각들은 극도로 정교한 현실이 오히려 허구적 이미지와 통할 수 있음을 증언해주며 인체조각의 새로운 가능성을 예시해준다”고 평했다.

 

200904090245.jpg

변웅필의 유화 ‘한 사람으로서의자화상 1과 1/4’. 똑같은 이미지를 크고 작게 그려 회화 본연의 특성에 대해 묻고 있다.

 

▶일그러진 그의 모습에서 나를 찾다-변웅필의 자화상= 화가 변웅필은 자신의 초상을 사진으로 찍은 후 개성과 사회적 신분을 드러낼 수 있는 요소(눈썹, 머리털, 옷)를 제거한, 색다른 자화상을 선보이는 작가다. 특히 유리판에 얼굴을 누르거나, 손으로 밀어 일그러뜨려 잔뜩 찌그러진 인상의 초상은 그의 트레이드 마크다.

 

변웅필의 초상화 작업은 독일유학시절 스스로의 정체성에 대해 수없이 번뇌하던 것에서 출발했다. 그 시절 자신을 포함한 인간 존재에 대해 무수히 많은 질문을 던졌던 작가는 이후 단순한 선으로 비특정적 인물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리곤 10년간의 유학을 마치고 귀국해 선보인 작품이 ‘한 사람으로서의 자화상’ 연작이다. 대부분 자신의 얼굴이지만 작가는 눈썹이며 수염까지 모조리 없애 스스로를 최대한 객관적으로 형상화했다. 따라서 작품이 캔버스에 옮겨지면 그 초상은 이미 작가 변웅필이 아니라, 불특정 다수의 모습이 된다. 즉 관람객인 나의 자화상일 수도 있고, 우리 시대 누구나의 자화상일 수도 있는 것. 그는 이같은 열린 개념의 초상화를 통해 매순간 끊임없이 변화하는 인간이란 존재의 혼돈과 불안을 표현한다.

 

변웅필은 ‘그림을 그린다’대신 ‘그림을 만든다’고 말한다. 화면을 넓게 오가며 수평으로 그어진 붓자국들은 평면에 형상을 그리는 것에 머무르지 않고, 형상을 새롭게 만들어내는데 힘을 쏟는 것.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회화 본연의 특징인 오리지널리티(originality)에 대해서도 진지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 하나의 같은 이미지를, 서로 다른 크기의 캔버스 2개에 옮겨 16쌍(총32점)의 작품을 내놓은 것도 그 때문. 한 작품은 90X75cm, 다른 작품은 4배가 큰 180X150cm로, 작가는 같은 이미지라 할지라도 회화의 경우(판화와는 달리) 각각 원본이 가지고 있는 아우라가 엄연히 다름을 우리 앞에 보여주고 있다. 02)519-0800

 

이영란 기자/yrlee@herald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