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러리 나우 변웅필 개인전 'SOME' 개최... 얼굴에서 구조로, 초상 이후의 회화

 

 

 

평면의 구조, 선을 비움으로써 형상을 그리다
작가의 선은 그려진 것이 아니라 남겨진 것으로, 색과 색 사이를 비워두는 방식으로 형성

 

 

안용호 기자   입력 2026.04.27 1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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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MEONE, 81cmx118cm, varnished oil on canvas, 2026. 사진=갤러리 나우

 

 

갤러리 나우는  변웅필 작가의 개인전 'SOME'을 2026.05.06(수)-05.30(토) 개최한다. 

 

변웅필의 회화를 구성하는 가장 핵심적인 요소는 평면성이다. 그의 화면은 깊이를 제거하고 공간을 압축하며 원근을 배제하고 대상의 입체성을 지운 채 색면과 경계만으로 구성되는데, 이때 중요한 것은 선의 방식이다.

 

작가의 선은 그려진 것이 아니라 남겨진 것으로, 색과 색 사이를 비워두는 방식으로 형성되며 이는 선이 형태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색이 형태를 드러내는 구조를 만들어낸다. 이러한 방식은 단순한 시각적 효과가 아니라 극도의 통제와 반복을 요구하는 수행적 과정 위에서 형성된다. 색은 한 번의 붓질로 완성되고 붓 자국은 허용되지 않으며 표면은 균질하게 유지되고, 작은 오차조차 전체 작업을 다시 시작하게 만드는 조건이 된다. 이 과정은 회화에서 감정의 흔적을 제거하고 화면을 철저히 비개성적인 상태로 밀어 넣는다.

 

그러나 바로 이 지점에서 중요한 전환이 발생한다. 표현이 제거될수록 회화는 감정을 전달하는 장치가 아니라 존재가 놓이는 조건을 드러내는 장으로 이동하며, 깊이를 상실한 평면은 세계를 재현하는 공간이 아니라 존재들이 동시에 머무는 장으로 기능하게 된다. 이러한 평면성은 세계를 대상화된 구조로 이해하기보다 관계 속에서 발생하는 상태로 이해하는 방식과 맞닿아 있으며, 메를로퐁티(Maurice Merleau-Ponty, 1908–1961)가 세계를 ‘사유되는 대상’이 아니라 ‘살아지는 장’으로 이해했던 관점은 이 회화의 감각을 해석하는 데 유효하다. 다만 변웅필의 경우, 그 ‘살아있음’은 감각의 흔적을 강조하는 대신 오히려 그것을 제거함으로써 확보된다는 점에서 역설적인 방식으로 성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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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MEONE, 74cmx54cm, varnished oil on canvas,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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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METHING, 90cmx147cm, varnished oil on canvas, 2026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시간 속에서도, 이상하게 또렷해지는 순간들이 있다. 굳이 이름을 붙이기엔 사소하고, 설명하려 들면 이미 충분히 지나가버린 것들. 변웅필의 회화는 늘 그 언저리를 맴도는 듯하다.

 

얼굴은 더 이상 개인의 정체성을 드러내지 않으며 눈·코·입이 제거된 형상은 특정 인물을 지시하지 않고, 인물은 이야기의 주체가 아니라 화면을 구성하는 하나의 구조로 남는다.

 

그의 화면에는 ‘누군가’가 있다. 그러나 그 누군가는 끝내 특정되지 않는다. 얼굴은 분명하지만 정체는 흐릿하고, 표정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감정이 또렷하게 읽히는 것도 아니다. 오래도록 자화상을 그려왔던 작가는, 결국 자신을 지운 자리에서 더 많은 불특정한 얼굴들을 만나기 시작했다. 낯선데 이상하게 익숙하고, 누구도 아닌데 어딘가 우리를 닮아 있는 얼굴들. 작가는 어쩌면 자신을 지워가면서 이런 얼굴들에 가까워졌는지도 모른다.

 

이 얼굴들은 굳이 무엇을 말하지 않는다. 화면 속 미소도 마찬가지다. 분명 웃고 있는 것 같지만 그게 어떤 감정인지는 쉽게 단정되지 않는다. 진심인지, 습관인지, 혹은 그저 그려진 표정일 뿐인지, 보고 있으면 알 것도 같다가 금세 멀어진다. 어쩌면 그 알 수 없음이 오히려 우리를 오래 바라보게 만드는 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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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MEONE, 147cmx113cm,  varnished oil on canvas, 2026

 

 

이번 전시에서 그 ‘머묾’은 인물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사물과 풍경, 그리고 그 사이 어딘가에 놓인 것들이 한 화면 안에 함께 존재한다. 서로를 구분하기보다 그냥 같이 있는 상태. 작가는 그것을 ‘어떤(SOME)’이라고 부른다. 분명 보이지만 쉽게 규정하기 어려운 것들, 스쳐 지나가는 것 같지만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는 감각들, 생각으로 정리되기 전에 먼저 다가오는 순간들이다.

 

그리는 과정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반복되는 붓질 속에서 조금씩 어긋나는 순간들을 그냥 받아들이고, 단정한 선과 익숙한 색 사이에 생기는 미묘한 차이들, 그 틈에서 비로소 드러나는 어떤 것들을 기다린다. 미리 정해두지 않았기 때문에 오히려 더 또렷하고, 설명되지 않기에 더 오래 남는다.

 

변웅필의 회화는 우리에게 무엇을 이해하고 규정짓기를 바라지 않는다. 대신 잠시 머물러서 바라보기를 권한다. 의미를 찾기보다, 이미 지나가고 있는 감각을 알아차리는 시간, 특별하지 않아도 괜찮고, 기억으로 남지 않아도 충분한 순간들에 대해 생각해보게 한다.

 

 

안용호 기자

ahnsbook@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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