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그러진 그의 모습에서 다른 나를 찾다

 

각기 다른 2가지 크기로 표현된 동일한 이미지

회화의오리지널리티 대한 제기

 

(2009 4 1서울) 갤러리현대 강남(대표 도형태) 일그러진 모습의 강렬한 자화상으로 주목 받아온 작가 변웅필 개인전 사람으로서의 자화상 1 1/4 오는 4 7()부터 26()까지 개최한다.

 

변웅필은 자신의 초상을 사진으로 찍어 눈썹, 머리털, 개성과 사회적 계층을 드러낼 있는 요소를 모두 없앤 인간 그대로의 모습을 회화 표현한다. 작가는 초상화가 표현하는 개인의 인상을 손이나 사물을 통해 망가뜨리고 혼돈에 빠뜨려 익숙하지만 한편으로는 혼돈스러운 상황을 제시하고자 한다. 작품의 모티브는 자신의 얼굴이지만, 결과물은 일반적인 너와 그리고 우리의 얼굴이며, 이는 우리가 처한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 때문에 혹자는변웅필의 얼굴은 일종의 다이나믹한 정물이요, 풍경이다(유경희, 미술평론가)”, “무감각한 인물화는 막다른 출구를 가진 하나의 정물화에 불과하다(요제프 스피겔, ‘쉐핑엔 예술인마을디렉터)”라고 평가했다. 작가는그림을 그린다대신, ‘그림을 만든다라고 말한다. 화면 전체에 수평으로 그어진 붓자국의 구조적 요소는 평면에 형상을 그리는 것에 머무르지 않고 형상을 만들어냄을 표현하고 있다.

 

이번 전시는 변웅필의 2007 두아트 이후 2 만에 갖는 개인전으로, 이번 전시를 통해 작가는 새롭게, 회화 본연의 특징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32, 각기 다른 가지(180x150cm / 90x75cm) 크기의 자화상 16쌍의 작품이 2개의 다른 크기의 공간에 펼쳐 선보여진다. 독특한 자화상으로 가득한 공간에 들어선 관객에게는, 회화에 관한 새로운 인식과 이를 통한 또다른 감상의 즐거움을 경험할 있는 값진 기회가 것이다.

 

2 기획의도 구체설명

 

변웅필(Byen, Ung-Pil) 우리에게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2006 개인전부터이다. 10년간의 독일 유학을 마치고 국내에 처음으로 소개된 그의 작품들은 모두 < 사람으로서의 자화상>이였다. 이후로도 작가는 계속해서 초상화 작업을 하고 있다. 그의 작품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언제나 일관되게 옷을 입지 않은 머리카락과 눈썹은 없고, 작품 속의 얼굴은 누구인지 알아볼 없을 만큼 일그러져있다.

 

1996 시작된 독일유학생활은 그에게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질문을 던지게 하였다. 초기 유학시절, 작가는 생활비를 마련하기 위해 식당에서 여러가지 아르바이트를 시작하였다. 그는 시간이 때마다 노트에 단순한 선을 표현된 인물을 그렸다. 드로잉 인물은 남자도 아니고 여자도 아니다. 어른도 아니고 어린이도 아닌, 그렇다고 무언가를 열심히 하는 모습도 아닌 그냥 무의미하고 무기력하게 보이는 모습의 인물이 아주 단순화된 선으로 표현되어있다. 변웅필의 드로잉 작품들은 디테일을 없애고 단순한 선으로 표현함으로써 자신이 누구이고, 어디서 왔으며, 어떤 존재인지를 묻고 있는 것이다. 많은 것을 버림으로써 드러난 실체에서 작가는 자신을 찾고 싶었는지 모른다. 이렇게 유학시절에 시작된 정체성에 대한 고민은 자신을 스스로 버리고 비움으로써 드러났다. 그의 드로잉에 나타난 정체성은 무언가를 쌓음으로서 드러나는 정체성이 아닌, 하나씩 버리고 이상 버릴 것을 없을 드러나는 정체성이다.

 

이러한 정체성에 대한 끊임없는 질문은 변웅필의 회화작품에도 그대로 나타난다. 회화작품은 초상화인데, 작품제목은 동일하게 < 사람으로서의 자화상> 이다. 자화상은 자신의 모습을 담는 것이지만 사람이란, 시간에 따라 자신의 경험에 따라 끊임없이 변화하는 존재이기 때문에 어제의 내가 오늘의 내가 아니고, 오늘의 나는 내일의 내가 아니다. 작가는 자신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고, 사진에 나온 자신의 이미지를 캔버스에 옮기면서, 머리카락과 눈썹, 수염, 자신의 사회계층을 알아차릴 있는 모든 요소을 제거하며 최대한 객관적으로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었다. 심지어 사물로 얼굴을 가려 사물 뒷편에 작가의 얼굴이 있거나, 얼굴을 자의적으로 심하게 일그러뜨려 캔버스에 옮겨진 사람은 누구인지 알아 수가 없다. 작품이 캔버스에 옮겨지는 순간, 인물은 이상 작가가 아닌 어떤 불특정한 사람의 모습일 뿐이다. 작품제목이 모두 < 사람으로서의 자화상> 이지만, 그의 작품에 드러난 인물들은 모두 변웅필의 자화상만 있는 것이 아니다. 변웅필의 작품에 나타난 자화상은 이미 특정인물의 자화상이 아니라, 어떤 불특정한 인물인 것이다. 그의 자화상은 자신이 정체성을 찾아가는 과정의 모습이기도 하지만, 어쩌면 작가의 자화상이 나의 자화상이 수도 있고, 그의 자화상은 우리 시대의 자화상인지도 모르겠다.

 

포스트구조주의의 대표적인 철학자인 들뢰즈(Gilles Deleuze) 시뮬라크르 이론에 따르면, 플라톤의 개념을 빌려 이데아, 현실, 시큘라크르로 차이를 이야기 한다. 이데아는 원형이고, 현실은 복제물이며 시뮬라크르는 복제물의 복제물이다. 복제물은 변화하지 않고 변화해서도 안되는 이데아에 대한 문제인데, 복제물은 시간의 변화에 따라 경험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에 완벽한 복제란 있을 없다. 시뮬라크르는 원형의 단순한 복제물이 아닌 독립성과 역동이 있다. 들뢰즈의 이론처럼 변웅필의 작품은 처음으로 자신을 촬영한 사진의 모습과 같아지려는 것도 아니고, 복제를 하면 할수록 자신의 모습과는 다른 복제물이 아니라, 새로운 공간을 찾아 자기정체성을 찾아가고 있는 것이다.

 

이번 전시에서 작가는 관람객에게 회화의 가장 특징 하나인 작품의 오리지널리티(originality) 대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 회화는 에디션 개념을 가지고 있는 판화, 사진과 달리 하나의 원본을 가지고 있다. 전시가 열릴 갤러리현대 강남에는 크기가 다른 개의 전시장이 있다. 공간은 다른 공간에 비해 거의 4배정도가 크다. 작가는 하나의 사진 이미지를 각기 다른 크기의 캔버스에 옮겼다. 작품은 90 X 75 cm 이고, 다른 작품은 이보다 4배가 180 X 150 cm 작품이다. 그리고, 공간에는 작품들이 전시되고, 작은 공간에는 작은 작품들이 전시된다. 이번 전시를 통해서 각기 다른 공간에서 다른 크기의 작품을 전시하여 하나의 전시로 묶으면, 반복된 이미지라 할지라도 각각은 원본이 가지고 있는 아우라를 잃지 않을 있을 것이라는 것을 보여주고자 한다. 그럼으로써 회화가 백년동안 누려오던 특권인 오리지널리티에 대해 생각해 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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