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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은 독일 유학 때 피부색이 다르고 말이 서툴기에 겪은 거부와 단절을 표현한 화가 변웅필의 <한 사람으로서의 자화상>(2008). ⓒ변웅필
최근 몇년 새 한국 사회에 솟구친 낱말 중 하나가 ‘감정’이다. 이성과 합리에 억눌려 있던 감정의 복권 혹은 재발견 시도라고 할까. 감정은 개인의 잘 삶을 위해서나 국가 살림살이를 잘 꾸리기 위해서도 필히 고려해야 하는 담론으로 떠오르고 있는 형국이다. 불안, 시기심, 두려움 같은 감정의 여러 무늬를 각기 내세운 책이 쏟아지고, <감정 노동>, <감정 수업>, <감정의 인문학> 같은 책이 독자들 눈을 끄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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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멸감-굴욕과 존엄의 감정사회학


김찬호 지음, 유주환 작곡
문학과지성사·1만3500원

 


사회학자 김찬호(52·성공회대 교양학부 초빙교수)의 <모멸감>도 이 흐름 속에서 모멸의 감정을 렌즈로 삼아 한국 사회, 한국 사람을 분석하려는 시도다. 선행 연구가 별로 없는 탓에, 이 책은 다른 나라의 정책·연구 사례를 통해 사회정책 차원의 시야를 확장한다기보다는 주로 한국과 다른 나라의 사회 현상을 들여다보며 입론을 펼치고 있다. 지은이가 모멸감을 붙들게 된 것은 인문학자 김우창의 <정치와 삶의 세계>란 책에서 쓴 “한국 사회가 오만과 모멸의 구조로 되어 있다”는 문장을 만나면서라고 한다.


김우창은 “우리 사회에서 우리 값어치는, 남의 눈에나 자신의 눈에나 사람의 값은 권력과 부와 지위에 의해 정해진다. … 이런 가치의 추구가 사회구조가 오만과 모멸의 구조로 되어 있기 때문에 불가피한 것이 된다”고 짚었다.


지은이는 오만과 모멸의 구조란 “자기보다 못하다고 여겨지는 사람을 아무렇지 않게 멸시하고 조롱하는 심성이 사회적 관성으로 고착된 것”으로 파악한다. 권력과 지위와 부를 얻음으로써 제 존재 가치를 증명하고자 하는 오만과 모멸의 구조 속에서, 힘 없고 돈 없는 사람들은 별볼일없는 존재로 무시되고 이유 없이 짓밟힌다.


우리에게는 타인과의 관계를 힘의 우열, 위계 서열이라는 프리즘으로 가늠하는 마음의 습관이 깊다. 한 방송사(교육방송)가 한 실험은 이를 보여준다. 빨간불 신호등 앞에서 멈췄던 차가 녹색불로 바뀌어도 출발하지 않고 그냥 서 있는다. 그 상황에서 뒤에 있는 차가 얼마 만에 경적을 울리는지를 측정했는데, 한 대는 국산차 중 가장 비싼 에쿠스, 다른 한 대는 경차 마티즈였다. 마티즈 뒤에선 평균 3초 만에 경적을 울린 반면 에쿠스 뒤에선 평균 10초였다. 에쿠스 뒤 차들은 경적을 내지 않고 옆으로 돌려서 빠져나가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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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멸감>의 지은이 김찬호는 한국 사회를 모멸감을 쉽사리 주고받는 사회라 진단한다. 문학과지성사 제공

 

힘없는 자 멸시하는 관성 고착
수치심은 폭력의 방아쇠 당겨
‘모욕 감수성’ 퍼뜨려 변화 제안


우리는 무엇 때문에 상대방에게 모멸감을 주는가. 어떤 이들이 남을 쉽게 모욕하는가. 사회와 일상 구석구석에서 크고 작은 모욕이 이어지는 데는 어떤 역사 배경이 있는가. 모욕에 쉽게 상처 받는 사람과 담담하게 견디는 사람 사이의 차이는 어디에서 오는가. 모멸감을 딛고 일어서는 힘은 어디에 있는가. 약자들이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은 어떻게 열릴까. 이런 질문들이 지은이가 풀고자 한 화두다.


그러면 모멸감이란 무엇인가. 수치심이 인간을 이루는 중요한 기본 감정이라면, 모멸(감)은 그 수치심을 일으키는 최악의 방아쇠라고 지은이는 말한다. 그 방아쇠가 격발하는 폭력, 그 극단적 예가 자살, 살인이다. 어린 고객이 반말을 쓰며 고압적인 태도를 취한다, 을 처지에서 갑을 찾아가서 오래 기다렸는데 만나주지 않는다, 열심히 일했는데 대가가 형편없다, 돈이나 지위의 힘으로 내게 말도 안 되는 일을 시킨다. 이런 상황에서 느끼는 감정이 모멸감이다. 모욕이 적나라하게 가해지는 공격적 언행이라면 모멸은 은연중 깔보고 무시하는 태도, 그 경멸이 빚어내는 감정이다.


동정한다며 ‘불쌍한 대상’으로 못박는 예도 많다. 지은이의 강의를 듣는 어느 학생이 엘리베이터에서 목격한 장면인데, 동승한 여성 장애인분이 얼굴에 화장을 하고 있었는데 함께 타고 있던 할머니가 잠시 내려다보더니 머리를 쓰다듬으며 이렇게 말했다. “어이구, 지도 여자라고.”
모멸을 주는 것은 일상에서 접촉하는 개인들만이 아니다. 여러 기준으로 열등 집단을 범주화하고 멸시하는 통념이나 문화, 일부 소수의 ‘잘난’ 사람들만 환대하는 분위기다. 저변에 흐르는 귀천에 대한 강박도 한몫한다. 자기 회사 엘리베이터에서 퀵서비스맨이 자기를 “아저씨”라 부르며 물건을 전할 사무실 위치를 물어보자 노발대발한 사장, 대학 캠퍼스에서 한 학생이 “아줌마”라고 부르자 버럭 화를 낸 교수. 이처럼 자기의 사회적 지위를 정체성의 핵심으로 삼는 이들은 자존심이 무너지는 상황에 쉽게 노출된다. 모욕을 쉽게 주는 사회 못지않게 위험한 것이 모멸감을 쉽게 느끼는 마음이라고 지은이는 말한다.


지은이는 감정이란 역사의 과정 속에서, 일정한 사회문화적 조건 속에서 형성된 마음의 습관이라고 말한다. 이를 바꾸려면 어떤 변화가 필요할까? 지은이는 모욕 감수성을 제안한다. 젠더·장애·인권 감수성 담론을 내세웠던 운동이 사람들의 성찰과 거기에 맞물린 정책 성과를 적잖이 이끌어낸 것처럼, 모욕 감수성을 널리 퍼뜨려 사회의 변화, 우리 마음 습관의 변화를 일으키자고 한다. 별생각 없이 던진 한마디가 상대방의 모멸감을 자아낼 수 있다는 걸 인식하고 상대방의 처지와 감정에 서는 연습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나 아닌 것들을 위해 마음을 나눌 줄 아는 사람은 아무리 험한 날이 닥쳐도 스스로 험해지지 않는다.”(인도 잠언집 <수바시타>에서)


허미경 기자 carmen@hani.co.kr